막을수록 빨라진 중국 반도체, 지금 어디까지 왔나

미국은 막으려 했고, 중국은 다른 길을 찾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시장의 시선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미국이 반도체 장비를 막으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산업도 함께 멈출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죠.

그럴듯한 이야기였습니다.

최첨단 반도체는 설계만 잘한다고 만들어지는 산업이 아니니까요.

노광장비와 소재, 공정 기술, 패키징, 수율까지 수많은 퍼즐이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넘기 어려운 벽이 바로 EUV 노광장비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수출 규제가 시작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중국은 결국 오래된 공정에 머물 수밖에 없겠구나.”

하지만 시장은 늘 예상보다 복잡하게 움직입니다.

멈출 것 같던 중국은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지금의 중국 반도체 산업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화웨이는 포기보다 생태계를 선택했다

미국의 제재를 가장 강하게 맞은 기업 가운데 하나가 화웨이였습니다.

스마트폰용 AP부터 AI 칩, 통신장비에 들어가는 프로세서까지 외부 공급망에 의존하던 부분이 한순간에 흔들렸죠.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사업을 축소하거나 새로운 공급처를 찾는 데 집중했을 겁니다.

하지만 화웨이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없으면 직접 만들자.

이 한 문장이 이후 중국 반도체 산업의 방향을 바꿨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화웨이는 칩 설계만 계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SMIC와 협력하고,
장비 기업을 키우고,
소재 업체와 연결하며,
클라우드와 서버 기업까지 하나의 생태계로 묶기 시작했죠.

핵심은 칩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중국 안에서 반도체가 스스로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더 가까웠습니다.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한때는 7나노 공정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SMIC는 7나노 공정을 실제 제품에 적용했고, 화훙 역시 같은 방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TSMC와 같은 방식은 아닙니다.

애초에 갈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우회로를 선택했습니다.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없다면 국도를 여러 번 갈아타는 방식이었죠.

최신 EUV 대신 DUV 장비를 반복적으로 활용해 비슷한 수준의 미세 공정을 구현하려는 전략입니다.

효율은 떨어집니다.

비용도 더 많이 들고 생산 속도도 느립니다.

그럼에도 의미는 분명합니다.

결국 목적지에는 도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시장도 이제는 “중국은 못 만든다”는 표현을 예전처럼 쉽게 쓰지 않습니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세계 1등이 아니다

중국 반도체를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TSMC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부터 묻습니다.

물론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목표는 당장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외부 제재가 이어져도 자국 산업이 멈추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

지금은 그쪽에 더 가까워 보여요.

생각해 보면 중국 안에는 이미 거대한 수요가 있습니다.

화웨이도 있고,
알리바바와 텐센트도 있습니다.

바이두와 바이트댄스처럼 AI 서비스를 키우는 기업도 계속 늘어나고 있죠.

이들이 일정 수준의 국산 칩을 꾸준히 사용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최고 성능이 아니더라도 생산은 이어집니다.

생산이 이어지면 경험이 쌓이고,
경험은 다시 기술 발전으로 연결됩니다.

이 선순환이 시작되면 산업은 생각보다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반도체보다 공급망을 만든다

그래서 저는 중국 반도체를 볼 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몇 나노까지 만들었는가’보다 ‘외부 충격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반도체는 이제 스마트폰에만 들어가는 부품이 아닙니다.

AI 서버도 움직여야 하고,
전기차도 반도체가 필요합니다.

통신장비와 산업용 로봇은 물론이고 국방 기술까지 모두 연결됩니다.

이쯤 되면 반도체는 기업 하나의 사업이라기보다 국가 산업의 기반이라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결국 경쟁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한때 반도체 경쟁은 누가 더 빠르고 더 작은 칩을 만드느냐의 싸움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경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새로운 기준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누가 외부 압박 속에서도 산업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가.

중국은 지금 그 답을 만들고 있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아직 세계 최고 기술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몇 년 전처럼 “불가능하다”는 말만 하기에도 상황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고 성능을 향한 경쟁은 여전히 이어질 겁니다.

다만 그보다 먼저, 스스로 돌아가는 공급망을 만드는 일이 앞으로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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