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 말은 거의 상식처럼 통했습니다.
공장을 세우려면 매연은 감수해야 하고, 도로를 놓으려면 숲은 밀어야 하고, 잘살고 싶다면 환경쯤은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 논리가 완전히 틀리지도 않았습니다. 적어도 한동안은요.
굴뚝 연기가 많을수록 잘사는 나라였다
20세기 산업화 시대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됩니다.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건 그 지역 사람들이 일자리를 갖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매연이 가득한 하늘은 생산이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였고요.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60~7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시대에 낙동강은 오염됐고, 대기는 뿌옇게 흐려졌습니다. 그게 당시엔 성장의 부산물이 아니라 성장 그 자체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니까 환경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하면 기업들이 반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비용만 늘고, 경쟁력만 떨어진다”는 논리는 꽤 오랫동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1997년, 전 세계가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교토의정서를 만들었을 때 미국이 서명을 거부한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된다.”
그런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변화는 드라마틱하게 오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숫자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태양광 발전 단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2010년만 해도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드는 건 비쌌습니다. 석탄이나 천연가스보다 몇 배는 더.
그런데 2020년이 됐을 때 그 비용이 약 90% 가까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10년 만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이제 태양광이 싸서 쓰는 게 아니라 그냥 경제적이어서 쓰는 선택지가 됐다는 겁니다. 환경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게 아니라 환경을 지키는 게 돈이 되는 구조가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도 눈치를 채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이미지 때문에 시작한 친환경 경영이 어느 순간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조건이 됐고, 그게 또 어느 순간엔 공급망에 납품하기 위한 자격 조건이 됐습니다.
환경이 도덕의 언어에서 돈의 언어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덴마크가 보여준 반전
지금까지 나온 사례 중 가장 흥미로운 나라가 하나 있습니다. 덴마크입니다.
덴마크는 1971년에 세계 최초로 환경부를 만든 나라입니다. 그때부터 환경 규제를 꾸준히, 그것도 꽤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기업들이 반발했을 것 같죠? 물론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조금 이상합니다. 그 규제를 버텨내고 적응한 기업들이 결국 풍력 기술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드는 회사가 됐습니다. 베스타스(Vestas)라는 덴마크 풍력 터빈 기업은 지금 전 세계 풍력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규제가 기업을 망친 게 아니라 규제 때문에 억지로 기술을 개발했고 그 기술이 수출 상품이 된 겁니다.
덴마크는 탈탄소화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저탄소 기술 분야에서 일자리 12만 개를 새로 만드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환경 정책이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설계가 된 셈입니다.
이게 바로 “환경이냐, 경제냐”가 아니라 “환경을 어떻게 경제로 바꾸느냐”의 문제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지금은 환경이 입장권이 됐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조금 더 직접적입니다.
유럽에 물건을 팔려면 탄소 배출 기준을 맞춰야 합니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의 협력사가 되려면 재생에너지로 공장을 돌려야 합니다. 투자를 받으려면 환경 성과를 숫자로 보고해야 합니다.
예전엔 환경을 지키는 게 착한 기업의 선택이었다면, 지금은 안 지키면 시장에서 밀려나는 구조가 됐습니다.
환경이 도덕의 문제에서 생존의 문제로 바뀐 겁니다.
물론 다 좋은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 흐름이 모든 나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미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후 정책의 방향이 크게 흔들립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석유·석탄을 다시 미국의 핵심 에너지로 내세우며 친환경 정책의 예산을 동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이미 공장 실컷 돌려서 부자가 됐으면서, 이제 와서 우리한테 탄소 줄이라고 한다.”
이건 개발도상국들이 하는 말인데, 틀린 말이 아닙니다. 환경 문제가 공평하게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그 해결 비용도 공평하게 나눠지고 있지 않다는 현실은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숙제입니다.
그래서, 결국 양립이 가능한가
제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결론은 이겁니다.
“가능하다. 하지만 저절로 되진 않는다.”
덴마크처럼 먼저 설계하고 먼저 움직인 나라는 환경도 지키고 새로운 산업도 얻었습니다. 반면 그냥 버티다가 규제에 떠밀린 나라와 기업은 비용만 늘고 경쟁력은 잃는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결국 환경과 경제의 공존은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먼저,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설계를 시작하는 타이밍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환경을 지키면 경제가 망한다는 말. 그 말이 통하던 시대는, 조용히 끝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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